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티안 비에리 (문단 편집) === 클럽 === 1991년 [[토리노 FC|토리노]]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, 실력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때부터 터프하다 못해 [[지랄|지X]]맞은 성질 때문에 '''[[저니맨|매년 팀을 갈아 치웠다.]]''' 처음으로 주목받은 것은 1993년 [[세리에 B]] 소속 라베나에서 32경기 12골로 주목받으면서였다. 이때부터 세리에 빅클럽에 관심을 받은 비에리는 1996년 [[유벤투스 FC|유벤투스]]에 입단해 알란 복시치와 투톱을 짜면서 주목을 받았고 [[AC 밀란]]의 주장 [[프랑코 바레시]]를 박살내는 등 23경기 8골을 넣어 유벤투스가 [[스쿠데토]]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. 또한 [[UEFA 챔피언스 리그]]에서 4골을 터뜨리며 유벤투스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는데, 특히 [[AFC 아약스|아약스]]와의 4강전에서 2골을 넣어 승리를 이끌었다. 하지만 [[UEFA 챔피언스 리그/1996-97 시즌/결승전|결승전]]에서 [[보루시아 도르트문트]]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.[* 후반전에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을 기록했지만, 그전에 발생한 비에리의 핸드볼 반칙으로 득점이 취소되었다.] 하지만 비에리는 낮은 주급에 불만을 터뜨렸고, 라리가의 [[아틀레티코 마드리드]]로 이적한다. 1997-98 시즌에 비에리는 대폭발하여 24경기 24골을 기록하여 한시즌만에 [[트로페오 피치치]]를 수상했다.[* 여담으로 이 때 비에리에게 밀려 조커에 머물렀던 선수가 [[K리그1]] MVP 출신 [[라데 보그다노비치]]. 조커임에도 14경기에서 6골을 넣었는데, 이 때 비에리는 워낙 미친 스탯을 찍던 시절이라 결국 주전으로 못 올라서고 [[네덜란드]]로 떠난다.] 1998-99 시즌에 [[SS 라치오|라치오]] 이적을 통해 [[세리에 A]]에 돌아온 비에리는 마르셀로 살라스와 투톱을 짜면서 [[세리에 A]]에서 12골을 터뜨렸고, [[UEFA 컵위너스컵]] 결승전에서 [[RCD 마요르카|마요르카]]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어, 2:1 승리를 이끌며 우승을 차지했다. 이후 1999년, 4648만 유로[* 한화 약 629억 8200만원]라는 역대 최고 이적료를 라치오에게 안겨주고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인테르]]로 이적한다.[* 이 기록은 후에 [[에르난 크레스포]], [[잔루이지 부폰]], [[루이스 피구]], [[지네딘 지단]] 등에 의해 깨졌다.] [[파일:external/www.sempreinter.com/Christian-Vieri-Inter.jpg]] 인테르에서의 데뷔전이었던 베로나전에서 [[해트트릭]]을 기록하며 화려한 출발을 했지만, 불행하게도 시즌 후반기에 또다시 부상을 당하며 1999-00 시즌은 20경기 출장(13골)에 그쳤다. [[UEFA 유로 2000]]에도 참가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. 기나긴 부상 끝에 2000-01 시즌 초반에 그라운드로 복귀해 시즌 중반에 또 한번 경미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, 별탈없이 27경기에 출장해 18골을 성공시켜 자신의 [[세리에 A]] 한시즌 최다출장과 최다골 기록을 세우며 부활의 시위를 당겼다. 아니나다를까, 다가온 2001-02 시즌. 부상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때보다도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온 비에리는 25경기에 무려 22골을 퍼부어 세리에 A 득점 3위에 올랐다. 적어도 5경기만 더 뛰었더라면 득점왕에 올랐을 수 있는 놀라운 활약이었다. 이 시기 팀동료인 [[호나우두]]와 함께 지구를 정복할 투톱으로 평가 받았으나 동시에 부상을 당했다. 2002-03 시즌에는 23경기에서 24골을 득점하며 [[카포칸노니에레]]를 차지했다. 뿐만 아니라 인테르를 [[UEFA 챔피언스 리그]] 4강까지 이끌기도 했다. 하지만 이해에 당한 큰부상때문에 커리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. 이후 2005-06 시즌 [[아드리아누]]에게 밀려 [[AC 밀란]]으로 이적했으나, 역시 [[알베르토 질라르디노]]에게 밀려, 반년만에 [[AS 모나코 FC|AS 모나코]] 행, 모나코에서 부상으로 [[2006 FIFA 월드컵 독일|2006년 독일 월드컵]]에도 참가하지 못했다. 2006-07 시즌 [[아탈란타 BC|아탈란타]]와 계약하면서 주급 100만원에 옵션으로 1골당 1억 보너스 지급이라는 해괴망측한 계약을 체결하지만, 역시나 부진하였다. 2007-08 시즌에 또다시 [[ACF 피오렌티나|피오렌티나]]로 이적하여, 부활의 날개짓을 펴는듯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[[콰밥만훈]]의 수장인 [[히카르두 콰레스마]]가 없었다면 2009년 황금 쓰레기통 상을 수상할 뻔한 실패한 시즌[* 1위가 콰레스마, 3위가 이전 2년 연속 수상의 [[아드리아누]]. 그 사이에 끼어있는 크리스티안 비에리를 보는 느낌이란 그야말로 세월무상.]이었다. 리그에서 6골을 득점하는데 그쳤고, [[UEFA 유로파 리그|UEFA컵]] [[레인저스 FC|레인저스]]와의 준결승 [[승부차기]]에서 실축하여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.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. 2008-09 시즌 또다시 아탈란타로 이적한지 몇개월 후 방출되어 겨울 이적시장때, 여러 브라질 클럽과 [[토트넘 홋스퍼 FC|토트넘 홋스퍼]]의 제의를 모두 물리치고 은퇴한다. 그런데 2016년 7월 30일 갑자기 [[http://sports.news.naver.com/kfootball/news/read.nhn?oid=413&aid=0000037458|중국 슈퍼리그를 통해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!]] 네티즌들은 [[뎀바 바]]를 생각하며 만류 중이다. 복귀를 선언한 당시 그의 나이는 '''43세'''였다. 그러나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얘기가 되고 있던 구단에서 아무래도 무산시킨 듯 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